금북정맥종주

◉금북정맥 1-1구간 ⇒(걸미고개)칠장산-옥정현 11.25km 1-2구간 ⇒ 옥정현-부소령 18.8km/ 합계 30.05km

행복의 샘터 2012. 11. 19. 19:07

금북정맥 1-1구간 ⇒(걸미고개)칠장산-옥정현 11.25km

 

1. 등산일시 및 기상 : 2011.6.11(토) 음력 5.11 맑음

2. 등산구간 : 걸미고개-칠장산-옥정현 16.8km (6시간 20소요)

3. 일출 일몰 : 일출 05:05 일몰 19:38 낮시간 14시간 33분

4. 교통편: 관광버스

 

*갈 때 : 포항시 지곡동(08:00)-31번국도-익산포항간고속국도-경부고속국도-남이분기점-음성IC-광혜원-걸미고개(영업용택시:날머리 옥정재에 자가용 주차 후 들머리 걸미고개로 이동-대절료 3만원)

*올 때 : 옥정현-302번도로-안성 1박-6.12 옥정재로 이동

 

5. 등산인원: 나와 아내

6. 등산코스 :

 

 12:10 걸미고개(175m. 17번국도.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12:20 안성골프장 통과

 12:45 좌벼울 고개

 13:00 산불감시초소

 13:40 비사리 열두고개

 14:00 3정맥(한남금북, 금북, 한남) 분기점/한남금북 정맥 종주 졸업. 금북정맥 시작

 14:05 칠장산(492m)

 14:15 3정맥(한남금북, 금북, 한남) 분기점

 14:30 헬기장

 14:40 칠순비 부부탑

 15:00 칠현산(516m)

 15:05 헬기장

 15:15 곰림 정상

 15:20 덕성산 삼거리

 15:25-35 덕성산(519m. 경기도 안성시. 충청북도 진천군)

 15:40 덕성산 삼거리

 17:20 사장골 정상

 17;45 만디고개

 18:15 고라니봉

 18:30 옥정현(해발 390m. 302번 지방도. 경기도 안성시. 충청북도 진천군)

 

금북정맥 1-2구간 ⇒ 옥정현-부소령 18.8km/ 합계 30.05km

 

1. 등산일시 및 기상 : 2011.6.12(일) 음력 5.12 맑음

2. 등산구간 : 옥정현-부소령 18.8km (8시간 20분소요)

3. 일출 일몰 : 일출 05:05 일몰 19:40 낮시간 14시간 35분

4. 교통편: 자가용. 영업용택시

*갈 때 : 6.11 /포항(08:00)-31번국도-익산포항간고속국도-경부고속국도-남이분기점-음성IC-광혜원-<걸미고개-칠장산-옥정현 산행>옥정현-안성 1박

//6.12 안성시-옥정현

*올 때 : 부소령(18:00)-57번도로-목천IC-경부고속국도-청원분기점-청원상주간고속국도-낙동분기점-중부내륙고속국도-김천분기점-경부고속국도-도동분기점-대구포항고속국도-31번국도-포항(22:00)

5. 등산인원: 나와 아내

6. 등산코스 :

 

09:20 옥정현(해발 390m. 302번 지방도. 경기도 안성시. 충청북도 진천군)

09:35 헬기장

09:40 409.9봉

10:00 송전탑

10:35 헬기장

11:25 장고개

11:55 중앙골프장

12:20 헬기장

12:45 이티재(370m. 배티고개. 325번도로)

14:30 서운산(547m)

15:30 청룡사 갈림길

16:35 엽돈재(34번국도. 경기 안성시 백곡면. 충북 천안시 입장면)

16:50 만뢰지맥 분기점

17:10 부소산(459m)

17:40 부소령(279m. 부수문이고개. 57번도로. 충북 천안시 입장면)

 

옥정현: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고갯새울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연결하는 고개.

 

[명칭유래]옥정(玉井)은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를 가리킨다. 따라서 옥정현(玉井峴)은 ‘옥정리로 넘어가는 고개’라서 붙은 이름이며, 달리 옥정리고개로도 부른다. 옥정은 전국적으로 발견되는 지명이다. 그리고 거의 예외 없이 ‘좋은 우물’로 풀이한다. 특히 충청남도 당진군 송악면 한진리의 옥정마을은 달리 옥우물로도 부른다. 그렇다면 옥정리는 ‘옥같이 맑은 우물이 있는 마을’로 풀이할 수 있다. 고구려와 백제의 옛 지명에 ‘영(嶺)’·‘현(峴)’계 지명이 여럿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황]옥정현은 높이 335m로 비교적 높은 고개이다. 과거에는 안성에서 구입한 소금짐을 지고 옥정현을 넘어 진천으로 와서 쌀과 바꾸어 가곤 하였다. 1994년경 신계리골프장이 들어서면서 2차선 진안도로(鎭安道路)가 개통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초평면 신통리 용동마을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임꺽정굴이 있다. 임꺽정이 이 굴에 은거하면서 이월면 옥정현과 백곡면 엽둔재[葉屯峙]를 거점으로, 안성 방면으로 약탈을 하기 위해 왕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엽둔재

 

[정의]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서수마을과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을 연결하는 고개.

 

[명칭유래]엽둔재(葉屯재)[344m]는 엽둔과 재로 나뉜다. 엽둔은 엽돈의 변화형으로 엽전(葉錢)을 말한다. 조선시대에는 도적 떼들이 들끓어 엽전을 지니고 다니는 사람은 모두 털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엽둔고개·엽둔재고개·엽둔치·엽둔티·협탄티[脇呑티]·협돈령[脇돈嶺]으로도 불린다. 협탄티는 이곳에 협탄원(脇呑院)이라는 원(院)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여겨진다. 협돈령의 협(脇)은 협탄티의 ‘협’이고, 돈은 엽둔재의 ‘둔’의 변화형으로 보인다. 고구려와 백제의 옛 지명에 ‘영(嶺)’·‘현(峴)’계 지명이 다수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자연환경]엽둔재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이루던 곳으로, 지금도 당시의 유지(遺址)가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안성에 사는 홍계남(洪季男)이 의병 수천 명을 모아 왜군과 싸워 승리한 뒤로 이 지역은 왜군의 침략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조정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홍계남을 수원부사로 임명하였다. 엽둔재 오른쪽에는 홍계남이 왜군과 싸울 당시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가 남아 있다. 간송(澗松) 이인덕(李寅悳)은 엽둔재의 경관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촉도(蜀道) 험준하다는 말 여러 번 배불리 들었는데, 상봉에 오르니 좁은 골짜기 얽히고 어지럽기도 하구나. 겨우 남북으로 조그마한 길이 통하고 있을 뿐, 경기와 충청 양도가 여기를 경계로 했구나. 홍계남 장군이 의병을 일으킨 일 청사에 빛나네. 국토를 구제한 그 고성 멀리 구름 속에 잠겼구나. 눈에 어리는 모든 사연 다감도 하구나. 시 한 수 읊고 또 한 번 얼큰하게 취했구려.”

 

[현황]현재는 진천군에서 엽둔재를 넘어 충청남도 천안시 입장면을 지나 경부선 성환역으로 통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엽둔재 중턱에서 나오는 물이 일급수라고 하여 서울과 경기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매일 성시를 이루고 있다. 초평면 신통리 용동마을에는 임꺽정이 은신하였다는 임꺽정굴이 있다. 임꺽정이 이 굴에 은거하면서 이월면 옥정현(玉井峴)과 백곡면 엽둔재를 거점으로, 안성 방면으로 약탈을 하기 위해 왕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진천의 고개

 

[정의]충청북도 진천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개설]국토의 70%가 산지인 한반도에서는 예부터 도보나 우마로 산을 넘어 통행할 수 있는 고갯길이 곳곳에 발달하여 중앙과 지방, 지역과 지역 사이를 그물코처럼 연결하였다. 오늘날에는 등산 기지 또는 관광지로서 가치가 크며, 철도의 통과에도 이용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북한의 함경산맥(咸鏡山脈)에 있는 금패령(禁牌嶺)[1,676m]이다. 북한에는 이 밖에도 1,000m 넘는 고개가 10여 개나 된다.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고개는 대관령(大關嶺)[832m]이며, 그 밖에 육십령(六十嶺)[734m]·죽령(竹嶺)[689m]·대간령(大簡嶺)[642m]·이화령(梨花嶺)[548m] 등이 있다. 국내외의 유명한 고개는 모두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데 특히 전적지, 설화 등과 관련이 많고 조망이 뛰어나다.

 

[지명으로서의 고개]고구려와 백제의 옛 지명에 고개를 뜻하는 ‘영(嶺)·현(峴)’계 지명이 여럿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아래 예는 ‘영·현’계 지명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쓰인 예이다.

 

현대 지명에서 ‘고개’계 지명은 대단히 생산적으로 쓰였으며, 고개·오개뿐만 아니라 재·영·치(峙)·현(峴)으로도 빈번히 쓰인다. 이들 중 치는 티로도 나타나는데 티가 월등히 많다. 고개 이름은 고개 이름에 주로 붙지만, 마을을 포함한 기타 지명으로도 전용되고 있다.

 

유의 중복 어형의 고개 이름도 많이 볼 수 있다. 꽃재고개·병마재고개·산막재고개·장판재고개·족박재고개·진재고개 등은 재와 고개가, 달티고개·말티고개·메리치고개·살티고개·삽티고개·새티고개·시어티고개·열티고개·염티고개·이티고개·작은하티고개 등은 티와 고개가 중복된 이름이다. 삼령고개는 영과 고개가, 놀치재·수티재·이티재 등은 치와 재가 중복된 이름이다. 이로 미루어 재·티·치·영 등은 고개라는 본래의 뜻이 약화되면서, 이를 보강하기 위해 유의어인 고개를 중복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고개를 뜻하는 지명의 후부 요소는 사용 빈도 면에서나 유의 중복 면에서 영·현·치〈재〈고개의 순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한자어보다는 고유어가, 고유어 중에서도 고개가 가장 우세하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진천군의 고개]진천군에는 옥정현·배티고개·장고개[성대리]·엽둔재·싸리재·돌목이고개·잣고개·사자골고개·장고개[금암리]·장교현·거멈고개·막골고개·말이장고개·해넘어고개·한티고개 등이 있다.

 

배티고개

 

[정의]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배티마을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 상촌마을을 연결하는 고개.

 

[명칭유래]배티고개는 조선시대 반역의 뜻을 품은 신천영(申天永)의 무리와 북병사를 지낸 이순곤(李順坤)의 의병이 싸운 고개인데, 신천영이 패하자 그 고개를 ‘패한 고개’라 하여 패티[敗티]라 하였고, 음이 변하여 배티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설은 믿을 수 없고, 배나무와 관련된 이름으로 여겨진다. 배티의 ‘배’를 이(梨)의 뜻으로 보고 한자화한 지명이 이티[梨티]이다.

 

전국적으로 배티 또는 배티가 전부 요소로 쓰인 지명이 더러 발견되는데, 이들 대부분은 배고개·뱃재와 함께 쓰인다. 따라서 배티나 배티고개는 ‘배나무가 있는 고개’로 풀이할 수 있다. 배티마을에 있는 배티고개도 마을 어귀에 돌배나무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인 듯하다.

 

배티나 이티에서 ‘티’는 고개를 뜻한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티 대신 재나 고개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되고, 그에 따라 티의 뜻이 불분명해지자 유의어 고개를 중복하여 배티고개로 부른 것이다. 배티나 배티고개는 그 뜻은 같지만, 현재 배티는 마을 이름으로, 배티고개는 고개 이름으로 나누어 사용되고 있다. 고구려와 백제의 옛 지명에 ‘영(嶺)’·‘현(峴)’계 지명이 여럿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황]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에 있는 배티마을은 원래 아랫말·중간말·꼭대기말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중간말은 없어졌다. 배티마을은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교우촌으로,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20~1830년대 무렵이다. 1857년 무렵에는 배티와 절골 주변의 양백리 삼박골, 용덕리 용진골·정삼이골, 백곡면 명암리 발래기·명심이, 백곡면 사송리 지구머리, 이월면 신계리 새울, 진천읍 지암리 지장골, 문백면 구곡리 굴티 등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배티는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신도 30여 명이 관군에게 학살당한 곳으로 지금은 성역화하여 순례지가 되었다.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의 박해 소설 『은화(隱花)』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만뢰지맥:금북정맥의 서운산의 남쪽으로 5,1km 떨어진 엽돈재 남쪽 200m에서 분기하여 만뢰산-청주시까지 49.5km 산줄기

 

부수문이 고개 :

 

천안시 서북구 임장면, 동남구 북면을 이어주는 고개‘ 459m

백제 시조 온조왕이 마한 복지국의 진왕으로부터 동북 100리 땅을 봉토받아 백제 첫도읍지 <하남 위례성>을 세운 곳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