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산행기

20131201 83재약산

행복의 샘터 2013. 12. 5. 11:41

 

83. 재약산(표충사-홍룡폭포-층층폭포-고사리분교 옛터)

 

 

1. 산행일 : 2013년 12월 1일(일)

2. 높이 : 재약산 수미봉 1119m

3. 위치 : 경남 밀양시 단장면

4. 특징/볼거리 :

 

   표충사. 홍룡폭포. 층층폭포(칭칭폭포). 옥류동천. 고사리분교 옛터. 사자평(125만평).

표충사 - 원효가 창건했으며 사명대사와 효봉스님을 배출한 대찰. 특히 유품전시관을 두고 해마다 향사를 지내는 등 사명대사의 호국성지로 유명하다.전시관에는 국보 75호인 청동합은 향완과 선조가 하사한 금란가사 등 보물과 문화재들이 가득 진열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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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선정 명산

 

5. 교통편: 자가용. 포항-7번 국도-경주IC-경부고속국도-서울산IC-24번국도-표충사 주차장(103km 2h)

6. 동행인 : 나와 아내

7. 등산코스/소요시간 : 6h

◦ 11:00 주차장. 표충사

◦ 11:30 홍룡폭포

◦ 12:30 층층폭포

◦ 13:00 임도 갈림길

◦ 13:20 고사리 분교 옛터

◦ 14:00 재약산 수미봉

◦ 15:30 진불암

◦ 17:00 표충사 주차장

 

 

 

층층폭포의 상단부

 

 

 

지금부터 1359년전인 654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훈(忠勳)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절입니다.

 

 

재약산 사자봉(왼쪽)과 수미봉(오른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습니다.

 

 

1592(임진)년 조선 선조 25년 4월-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천년보찰” 모두가 전화를 입어 사찰의 정세는 몰락하고 수많은 승려들은 의병승으로 동참하였습니다

 

 

사기(寺記)에 의하면 654년(진덕여왕8년, 무열왕元년) 원효대사가 삼국통일을 기원하고자 654년 창건하고 죽림사(竹林寺, 竹園精舍)라 했으며, 829년(흥덕왕 4) 인도의 고승인 황면(黃面)선사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할 곳을 동방에서 찾다가 황록산 남쪽에 오색서운이 감도는 것을 발견하고는 3층 석탑을 세워 사리를 봉안했다고 합니다.

서기 829년 신라 흥덕왕 4년에 왕의 셋째 왕자가 몹쓸 병을 얻어 전국의 명산과 명의를 찾던 중 이곳의 약수를 마시고 황면선사의 법력으로 쾌유되어 왕이 친히 찾아와 크게 칭송하니 선사가 말하기를 "이곳 유수와 산초가 모두 약수요, 약초아님이 없습니다."라 말하니 왕이 기뻐하고 절 이름을 재약산 영정사(載藥山 靈井寺)라 명명하고 절을 크게 부흥 시켰다고 합니다.

 

 

사명대사는 서산대사의 제자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스승을 도와 의승병을 일으켜 평양성 탈환의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나라를 구하고자 서생포 가등청정의 적진으로 네차례나 회담을 하기 위해 들어 갔고 1597 정유년 외장 가등청정이 "조선에 국보가 있느냐?"고 묻자 "가등청정 당신의 목이 바로 조선민족의 국보다."하고 할을 하며 적장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고 합니다.

 

 

1604년 2월에 스승이신 서산대사의 부음을 받고 묘향산으로 가던 중 선조의 국서를 받들고 8월 일본으로 탐적사(강화정사)로 가서 8개월 동안 각고의 노력끝에 포로로 잡혀간 동포 3,000여명과 함께 귀국하는 등 외교적 업적을 남겼다. 그 해 6월에 선조에게 복명하니 가의대부(嘉義大夫) 영의정을 하사 받았으나 3일 만에 관직을 사양하고 그 해 10월에서야 스승이신 서산대사의 영정에 분향 참배하고 다시 합천 해인사에 들어가 결가부좌한 채 무량선정에 들다가 광해군 2년(1610) 열반에 드시니 법랍 51년 세수 67세이며 시호는 자통홍제존자(慈通弘濟尊者)라고 합니다.

 

 

당시 조정에서는 국장으로 장례를 지내고 밀양 표충사(祠)와 묘향산 수충사(祠)에 서원 편액을 내리며 유교식 제향으로 봉행토록 했습니다.

숭유억불 조선시대의 당시 사회로서는 승려에 대한 파격적인 예우였던 것이다. 또한 사명대사가 태어났던 밀양 무안면에 표충사당과 표충비 이를 수호할 표충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그 후 오랫동안 당쟁으로 조선의 중신들은 구국의 영혼인 삼대성사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1839년(헌종5년) 사명대사의 법손(法孫)인 월파당 천유(月坡堂 天有)선사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예조에 소청을 올리면서 무안면에 있던 표충사(表忠祠)를 그 당시 폐사로 있었던 영정사 경내로 사당과 서원을 옮기면서 가람배치가 크게 변하고 절 이름도 표충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현재 이곳에는 중앙에 사명대사 동쪽에는 그의 스승인 서산대사, 서쪽에는 임란 때 금산전투에서 800 의승병과 함께 장렬히 전사한 기허당의 영정을 함께 모심으로 삼대성사를 추모하는 서원이면서 그 관리와 제향을 사찰에서 맡는 유불의 이원적 구조로서 불교의 호국사상과 중생구제사상 그리고 유교사상의 의(義)와 공존하게 되므로 표충사(寺) 안에는 표충사(祠)와 표충서원이 있게 되었으며, 본사인 통도사와 더불어 동부 경남을 대표하는 명산 대찰인 것입니다.

 

 

 

1592(임진)년 조선 선조 25년 4월-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천년보찰” 모두가 전화를 입어 사찰의 정세는 몰락하고 수많은 승려들은 의병승으로 동참하였습니다.

 1596(병신)년 선조 29년-왜적이 마지막 퇴각할 때, 사명대사께서 왜군의 재침을 막기 위하여 영정사에 의승병 훈련소를 설치 사자평에서 의승병을 훈련시키였다고 합니다.

 

 

보물 제467호 표충사 삼층석탑

 

 

옥류동천

 

 

홍룡폭포-1

 

 

홍룡폭포-2

 

 

홍룡폭포-3

 

 

 

옥류동천-1

 

 

옥류동천-2

 

 

옥류동천-3

 

 

옥류동천-4

 

 

옥류동천-5

 

무명폭포

 

 

 

 

 

층층폭포의 하단부-상단부 사이로 다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층층폭포의 상단부-이곳에서 휴식 및 점심식사를 한 후 내려가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층층폭포의 하단부-상단부 사이에 놓인 다리

 

 

 

 

폐교된  고사리 분교에서 정상으로 가는 도중의 나무계단

 

 

경주 불국사의 복돼지를 닮았네요. 이곳에 오시는 등산객들의 번영과 안녕, 행복을 선물하는 듯 합니다. 

 

 

간월산-간월재-신불산-신불평원-영축산 라인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1596(병신)년 선조 29년-왜적이 마지막 퇴각할 때, 사명대사께서 왜군의 재침을 막기 위하여 영정사에 의승병 훈련소를 설치 사자평에서 의승병을 훈련시키였다고 합니다. 사자평의 억새 면적은 125만평으로 엄청나게 넓지만 억새가 볼폼 없어 억새 명소에는 이름이 오르지 못한다고 합니다.

 

 

 

재약산 사자봉에는 4번째 수미봉에는 3번째 올랐지만 오늘은 재약산 산신령의 기분이 좋은지 파란하늘과 흰구름을 선사합니다.   

 

 

 

북쪽의 재약산 사자봉 방면

 

 

저 멀리 가지산이 희미하게 조망되고 배내봉도 얼굴을 내밀고 있습니다.

 

 

날씨가 너무 좋아 정상석을 다시 한번 어루만지며 한컷...

 

 

 

 

눈아래는 서자평이요, 저 멀리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이 인사를 하는듯 합니다.

 

 

서쪽 방면의 표충사 입구 방면 계곡